글
우리 엄마는 언제나 밝고 씩씩한 사람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긍정적인 기운을 나눠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식들 앞에서 눈물 몇 번 보인 적 없는 강한 사람이었다.
우리 엄마는 생활력 넘치는 여장부였다. 알뜰살뜰 우리 가족의 살림을 책임졌고,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겨 배치하는 데 능수능란한 우리 집 살림꾼이었다. (우리 집 강아지 몽실이 또한 엄마의 관리 아래 여지껏 건강히 자라왔다.)
또 우리 엄마는 다양한 일에 거리낌 없이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텔레마케터부터 구내식당 운영, 아파트 동대표, 요양보호사, 통장 후보자 지원까지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엄마가 아프다고 했다. 콧물, 코막힘으로 시작되어 조직검사 끝에 결국 혈액암, 림프종 진단을 받게 되었다. 소식을 듣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마주한 아빠와 엄마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다. 23년 4월이었다.
여러 검사를 진행했고 몇 주가 지났을까, 엄마의 항암 과정이 시작되었다. 항암제 투여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며 힘들어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왜 이런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병에 대해 공부하며 엄마가 나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했다.
방사선 치료의 결과는 긍정적인 것으로 보였다. 또한 이어지는 항암 과정 속에서도 엄마는 우리에게 힘 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랬기 때문에 나 개인적으로 엄마가 반드시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더욱 크게 품게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는 병상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가을에 있을 여의도 불꽃축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 항암 스케줄이 불꽃축제 기간일지, 그렇다면 창가 병상에서 지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며 나와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8월 중순경 항암 부작용으로 엄마의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금요일 퇴근 후 보호자 교대를 위해 병원으로 향했고, 그 날 엄마가 처음으로 중환자실로 이동하게 되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급박한 상황 속에서 몹시 불안했고,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일반 병실로 돌아온 후에도 항암 중 찾아온 폐렴으로 인해 엄마는 몹시 힘들어했다. 거동이 불가능했고 호흡을 내쉬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간병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따뜻한 햇살 아래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 젊은 대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나만 덩그러니 버려진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우리 엄마는 무엇 하나 잘못한 거 없는데 왜 이러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그렇게 힘들어 하던 엄마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 가게 되었다. 그리고 여의도 불꽃축제가 끝나고 몇일 후인 10월 9일 급히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잔인했던 23년이 끝나가고 내 생일이 다가오며 엄마에 대한 생각이 더욱 떠오르게 되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천국에서는 더이상 아프지말고 깃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이리저리 누비며 행복한 시간 보내고 있길… 보고싶다던 할아버지, 큰이모와 웃고 떠들며 좋은 시간 보내고 아빠와 예지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잘 지켜봐 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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