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 (2000년-2003년)
# 2000년, 아버지를 따라 우리 가족은 강원도 인제로 이사를 갔다. 전라남도 장성에서 강원도 인제로 이사를 간 것이다. 출발지였던 상무아파트에서 도착지인 천도회관까지의 거리를 네이버 지도로 알아본 결과 대략 440km. 지금이야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이 정도일테지, 옛날 같았으면 더 먼 거리이지 않았을까?
# 이사, 현재의 나에게 있어 이사(理事)라는 단어는 익숙한데 이사(移徙)는 상당히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당시 우리 가족에게 이사(移徙)는 자연스러운 이벤트였다. 21세기를 앞두고 있던 2000년의 여름, 우리 가족은 엘란트라에 몸을 싣었다.
# 당췌 강원도 인제라는 곳이 어디야? 고속도로를 달렸고, 꼬불꼬불 산길을 넘어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 우리는 원통에 도착했다. 이 곳이 우리가 살아갈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운전을 멈추지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꼬부랑길을 돌아 돌아 이삼십여분을 달렸을까? 마을이 보였다. 해가 떨어져 사방이 어두웠고, 비까지 내리는 가운데 비득고개에서 바라본 천도리는 흡사 유령마을 같았다.
# 서화리 관사로 이사를 완료하기 전, 몇 일간 우리 가족은 천도회관에 머물렀다. 부모님은 짐 정리로 바쁘셨고, 나와 동생은 학교도 가지 않고 탱자탱자였다. 요새 말로 꿀이었다.
# 몇일 후 서화중학교로 전학 수속을 밟았다. 쭈뼛쭈뼛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수업을 받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전학생을 구경하겠다고 교실 전체가 웅성거렸다. 몹시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웠다.
# 새로운 집단에 적응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왔고,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또한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니던가?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부침이 많았다.
# 학교 생활에 별 다른 점은 없었다. 학교와 집으로 무한루프를 돌았다. 서화리 관사는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TV로 볼 수 있는 채널은 단 4개 정도? (당시 최대 히트 드라마인 야인시대도 볼 수가 없었다. SBS에서 방송했기 때문에.) 도무지 놀 거리가 없으니 하교 후에는 거실 쇼파에 누워 잠만 잤다. 삶의 낙이 없다 싶으니, 가끔 동네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 (주말에는 어머니께서 손수 차를 태워 서화리 피시방까지 데려다 주셨다. 엄마 알라븅.)
# 2001년, 부모님께서는 하나뿐인 아들이 의기소침하고, 패기가 없어보였는지 나를 군 부대로 보내버리셨다. 그렇다. 아버지가 대대장으로 근무하셨고, 내가 군 생활을 한 79포병대대. 당시 대대에는 테니스코트 관리병이었던 모 상병 형님이 계셨는데, 그 형님이 나를 관리해주셨다. (보통 20살~21살에 군대를 가니까 81년생정도 되시려나?) 형님과 P.X도 가고, 막사 청소도 하고 하루 만에 뛰쳐 나왔다.
# 그 이후에는 몇 번 부대를 내 발로 드나들었다. 사이버 정보방이란 곳이 있었는데, 그 곳에 동생과 같이 가서 인터넷을 하곤 했다. 속도는 무진장 느려서 속이 터질 정도였다.
# 당시만 해도 나는 컴퓨터 꿈나무였고, 글쓰기를 좋아했다. 비쥬얼 베이직을 배웠고, HTML 태그를 배워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 (동생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겠다고, HTML로 단어장 페이지를 만들었다.) 만약 컴퓨터를 계속 배워왔다면, 지금은 프로그래머의 길을 걷고 있었으려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나만의 판타지 소설을 쓰기도 했다. (판타지 소설같은 건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고작 몇 번 해본 온라인 게임을 토대로 소설을 썼었다.) 여러모로 가능성이 많던 시절이었다.